도하루 켄 (1/2)「서국 무쌍의 사무라이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

도하루 켄

도하루 켄

기사 카테고리
인물기
이름
도하루 켄(1521년~1555년)
출생지
야마구치현
관련 성

무로마치 시대 후기에 일어난 오히토의 난. 이 오히토의 난의 때, 서군 주력이 된 것이 주방국의 다이묘 오우치가였습니다. 그 오우치가를 옛부터 지지한 것이 도씨입니다. 도씨는 오우치가 서류로서 흥해, 주방국 수호대 등을 맡습니다. 그리고 도씨로부터 나온 것이 도료현이었습니다. 하루켄은 오우치 요시타카를 섬겼습니다만,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오우치가를 소 듣습니다. 이번은 오우치 가문에 반기를 들고 모리 모토나리에 패한 도하루 켄을 봅니다.

오우치씨와 도씨

도하루 켄을 배출한 도씨. 도 씨는 주호국(현재의 야마구치현)을 중심으로 다스리고 있던 수호 다이묘 오우치 씨의 서류에 해당합니다. 본가근에 해당하는 오우치씨는 백제성왕(성명왕)을 조로 한 한반도로부터의 도래계 씨족, 다타라씨로부터 흥했습니다. 헤이안 시대 후기, 이 오우치가로부터 우다씨가 나뉘어집니다. 게다가 우다씨로부터 나뉘어진 것이 도씨였습니다.

남북조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 도씨는 주방국 수호대를 대대로 이어가 오오이씨의 중신으로서 영국 운영에 참가해 갑니다. 오히토의 난에서는 오우치씨도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었지만 도씨가 내란을 다스려고 하는 등 힘을 붙여 나갑니다.

도하루 켄의 아버지 도흥방은 오우치 요시오키, 그 아이의 오우치 요시타카의 중신으로서 산인의 아마코가와 기타큐슈의 소弐씨와 싸워, 오우치가 안에서 확고한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무로마치 시대 중기에는 중국 지방의 수컷이 된 오우치가. 그 오우치가의 중신이 된 서류의 도씨에게 도하루 켄은 태어납니다.

도하루 켄의 탄생

도하루 켄은 주방국 수호 다이묘 오우치 가 중신이었던 도흥방의 차남으로서 대영 원년(1521)에 태어납니다. 하루켄에는 해가 떠난 형흥창이 있었습니다만 하루현이 8세의 무렵, 향록 2년(1529)에 25세로 사망합니다. 따라서 도하루 켄은 차남이면서 어릴 적부터 도자의 흔적으로 생각되고 있었습니다.

도하루 켄은 소년 시절, 미남으로 알려져 주군 오우치 요시타카에 중용됩니다. 어렸을 때는 주군 오우치 요시타카의 옆 근처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전복함에 있어서, 주군의 오우치 요시타카의 편망을 받습니다.

도씨는 대대로 오우치가 당주로부터 한자를 주어지는 것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하루켄은 오우치 요시타카의 다카시를 배령하고, 도타카보(이후도 알려져 있는 “하루켄”으로 통일합니다)라고 자칭했습니다.
도하루 켄은 전복하면 오우치가의 중신으로서 천문 6년(1537), 종 5위 아래에 서위됩니다.

그리고 도하루 켄 18세 무렵, 천문 8년(1539). 아버지의 도흥방이 사망하고 도하루 켄이 도자의 가독을 계승했습니다. 다만 도흥방은 죽기 직전, 우리 아이 도료현의 성격을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 흥방은 용맹이지만 직정형의 성격을 하고 있던 하루현의 성격을 간파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기우는 미래에 현실이 될 것입니다.

오우치씨의 중신으로서

그런데 주방국 수호 다이묘였던 오우치씨. 도자의 본가근이었던 오우치씨는 가마쿠라 시대, 이미 주방국을 통치하기까지 되어 있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가면 야마나 무네전에 다가오고, 오히토의 난에서는 오우치 요시타카의 할아버지, 오우치 마사히로가 서군 주력으로서 활동합니다. 한층 더 요시타카의 아버지, 오우치 요시코의 대가 되면서 기타큐슈로부터 중국 지방까지의 지반을 굳혀 확고한 지위를 구축했습니다. 이에 대해 산인지방에서는 신흥의 아마가가가 대두합니다.

도하루 켄이 가독을 이은 다음 해. 천문 9년(1540), 산인 이즈모국(현재의 시마네현)의 아마코 하루쿠가 안예국(현재의 히로시마현)에 있던 요시다군 산성을 공격합니다. 요시다군 산성을 다스리고 있던 모리 모토나리는 아마코가에 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대에 아마코가를 산인 최대의 다이묘로 밀어 올린 아마코 히사히사가 은거하고, 손자의 하루쿠가 아마코가 당주가 되면 오우치가로 안장 바꿉니다. 당연히, 되돌아온 아마가는 모리가에 대해 보복에 나옵니다. 군세를 정돈하자 이즈모 나라에서 아키쿠 나라로 공격했습니다. 모리 모토나리는 오우치가에게 원군의 요청을 합니다. 부탁받은 오우치 요시타카는 도청현에게 총대장의 권한을 주고 응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음 천문 10년(1541), 도하루 켄은 아키쿠니에 공격해 들어간 아마코가를 훌륭하게 격퇴합니다(제1차 요시다군 산성의 싸움). 도하루 켄은 「서국 무쌍의 사무라이 대장」이라고 불리는 정도의 전교자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의 천문 11년(1542). 이번에는 오우치가가 아마코가에 대해 역침공을 겁니다. 주방국에서 이즈모국에 침공하여 츠키야마 도미타성을 공격한 오우치가였지만(제1차 월 야마토미타성의 싸움), 오우치 요시타카의 입양이었던 오우치 하루모치 등 다수의 사상 사람을 내고 대패했습니다.

이 대패에 빠진 오우치 요시타카는 군사에 관한 흥미를 잃고, 영국의 정권 운영도 소소하게 해 문화 활동에 힘을 쏟습니다. 영국통치에 관해서는 문치파의 사가라 무임을 중용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라씨는 히고국(현재의 구마모토현) 소라가를 종가로 해, 야마구치에 흘러 왔습니다. 사가라 무임은 일찍부터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유필(비서)로서 섬깁니다. 한층 더 봉행에 발탁되면 영국의 통제, 오우치 요시타카에의 권한 강화에 맡습니다. 종가가 히고의 소라가에서 밖에 대해 강한 파이프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있어, 오우치 요시타카는 무임을 매우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무단파였던 도하루 켄은 오우치 집에서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주군의 오우치 요시타카와도 휨이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군 오우치 요시타카와의 반목

천문 14년(1545)의 일, 주군 오우치 요시타카에 친자의 오우치 요시타카가 탄생합니다. 도하루 켄은 이 의존의 탄생을 계기로, 문치파였던 사가라 무임을 강제적으로 은거에 몰아넣어 세력을 회복시킵니다. 사가라 무임은 히고국으로 도망쳤습니다.
천문 17년(1548), 오우치 요시타카는 조정보다 종 2위에 서위되면, 도청현도 종 5위 가미오 장수에 승서됩니다. 또 오우치 요시타카의 명령으로 비젠국(현재의 히로시마현 동부)에 모리 모토나리와 출진해, 야마나 리흥이 처하는 가나베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진베 합전).

그런데 같은 해, 오우치 요시타카는 히고국에 있던 사가라 무임을 불러옵니다. 오우치 집에서 힘을 갖게 된 도하루 켄은 직정형, 독단 전행의 성격으로 주군의 오우치 요시타카는 불안을 기억했습니다. 규슈에서 불러온 사가라 무임을 평정중에 취해 영내 운영에 복귀시킵니다. 다시 도료현은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도하루 켄의 모반

천문 19년(1550), 힘을 약화한 도하루 켄은 나이토 오키모리 등이라고 말해, 사가라 무임을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암살은 사전에 알려진 뒤에 오우치 요시타카의 꾸짖음을 받아 오우치가에서의 입장을 잃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의 천문 19년(1550). 분고국(현재의 오이타현) 오토모가는 집안이 2개로 갈라졌습니다. 주군의 오오토모 의감과 그 3남 시오이치마루를 중심으로 한 가신의 그룹과 의감의 장남 오토모 종린(義鎮)을 추구하는 가신의 그룹입니다. 결과, 오오토모 소린이 군주의 자리에 도착합니다(2층 무너짐의 이상).

도하루 켄은 이 새롭게 분고국의 다이묘가 된 오토모 종린을 눈길을 끈다. 하루켄은 오우치 요시타카를 군주의 자리에서 쫓아, 종린의 동생 오오토모 하루에를 새로운 주군으로 맞이하는 내의를 얻었습니다. 오오토모 하루에의 오빠 오토모 소네는 이모 형제였고, 하루에의 어머니는 오우치 요시타카의 언니였습니다. 즉 오오토모 하루에이는 오우치가의 피를 당기고 있습니다. 소린은 최초로 이 이야기에 소극적이었지만 하루에이가 꼭 밀어 이야기가 성립했습니다.

천문 20년(1551), 사가라 무임은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사이라 무임 신장」을 요시타카에 내보냅니다. 이 중에는 도하루 켄과 나이토 오키모리가 모반을 기획하고 있다고 쓰여졌습니다. 이를 전기에 문치파를 옹호하는 오우치 요시타카와 도청현을 중심으로 하는 무단파와의 대립은 결정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천문 20년(1551) 8월 28일, 도하루 켄은 거병해 9월에는 오우치 요시타카를 자해에 몰아넣고 있습니다(대녕사의 이상). 또한 사가라 무임 등의 문치파, 오우치 요시타카의 嫡男義尊 등도 토벌 일소했습니다.

오우치 의장의 옹립

오우치 요시타카를 토벌한 도하루 켄.
하루켄은 오우치 요시타카를 토벌하기 직전에 분고국의 오토모 종린과 밀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오우치 요시타카를 자해에 몰아넣으면 요시타카의 조카, 소린의 동생인 오우치 하루에이를 오우치 가문의 당주로 맞이합니다.

도료 켄의 기사에는 계속이 있습니다.

하즈키 토모요
작성자(라이터)학생 시절부터 역사와 지리를 좋아해, 사적이나 사찰 불각 순회를 즐기고, 고문서 등을 조사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사에서는 중세, 세계사에서는 유럽사에 강하고, 1차 자료 등의 자료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역사 소설까지 폭넓게 읽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무장이나 성은 너무 많아 좀처럼 들 수 없습니다만,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아케치 미츠히데, 성이면 히코네성·후시미성을 좋아한다. 무장의 삶과 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일면도 있습니다.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