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 성효고현 히메지시

히메지 성 DATA
천수현존 천수 | 국보 고성
별칭백로성
축성1346년
주소효고현 히메지시 혼마치 68
히메지성 교통편
JR 서일본·산요 신칸센·산요 본선·히메신선·하타선 히메지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 약 20분.

HISTORY세계유산에 등록된 근세성곽을 대표하는 유구, 히메지성

히메지성은 하리마 쿠니시카마군(현·효고현 히메지시)의 북쪽에 있는 히메야마 및 사야마를 중심으로 쌓아 올린 히라야마성입니다. 에도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천수지와 망·도망·동·문·담 등 80동 이상이 현존하고, 8동이 국보, 47동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또, 헤세이 5년(1993년)에는 나라의 호류지와 함께 일본 최초의 세계 유산(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에도 그 매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히메지성의 역사를 풀어 봅시다.

히메지성의 시작
히메지성의 시작은 원히로 3년(1333년)에 북한의 무장 아카마츠 노리무라가 히메야마에 요새를 쌓고 그 아들 아카마츠 노리무라가 본격적인 성을 쌓은 것이 시작이라고 합니다.
덧붙여 이 설에는 이론이 있습니다. 아카마츠씨가 구축한 것은 어디까지나 작은 요새이며, 본격적인 축성을 실시한 것은 「군사관병위」의 통칭으로 유명한 구로다 타카타카(관병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해당하는, 구로다 시게타카와 구로다 노부타카였다 라는 것입니다.
현재, 히메지성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카마츠씨가 히메지성의 전신인 성을 구축한 설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 후, 아카마츠씨는 아카마츠 만유의 대에서 6대 장군 아시카가 의교를 모살해, 자해합니다(카요시의 난).
주님을 잃어버린 히메지성은 나중에 오닌의 난으로 서군 총대장을 맡은 아카마츠 만유가 성대를 맡게 되었습니다.
덧붙여 오히토의 난이 발발했을 때, 아카마츠씨 9대째에 해당하는 아카마츠 마사노리가 히메지성을 함락해, 영지를 회복합니다.
그 후, 히메지성은 아카마츠씨의 서류인 고데라씨, 한층 더 그 중신인 쿠로다씨의 보관이 되어, 텐쇼 8년(1580년) 하시바 히데요시의 중국 공격의 본거지로서 히메지성은 그에게 헌상되었습니다.
이때 3층의 천수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텐쇼 13년(1585년)부터 기노시타 정가가 히메지성 성주가 되어 16년간 성을 지켰습니다.
에도시대의 히메지성
게이쵸 5년(1600년)에 세키가하라의 싸움이 일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 통일을 완수한 후, 히메지성은 기후성 공략의 공적으로서 이케다 테루마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케다 테루마사는 초대 히메지 성 성주로서 성의 대개수를 9년의 월일을 걸쳐 실시합니다. 이로써 히메지성은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 후, 히메지성은 이케다가·혼다가·마츠다이라가·사카키하라가 등 복수의 집이 성주를 맡고, 증개축이 반복된 후, 사카이가가 메이지 유신까지 성주를 맡았습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의 히메지 성
메이지 유신 후, 히메지성은 일단 육군성의 관리하가 됩니다만 곧바로 민간에 지불하겠습니다.
이때 한번은 민간인의 것이 되었지만 곧 다시 국유가 됩니다. 국유가 된 히메지성은 육군 병영지가 되어, 보병의 주둔지로 하기 위해서 복수의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그 후, 남겨진 천수 등도 부후가 진행되었습니다만, 육군의 나카무라 중원공병 대령이 중심이 되어, 히메지성의 수복이나 보존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나고야성과 함께 천수와 망등의 보존이 정해져, 「메이지의 대수리」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수선 공사가 행해졌습니다.
그 후, 히메지성은 군으로부터 히메지시로 내려져 다이쇼 9년(1913년)에 일반 공개도 개시합니다. 쇼와 2년(1927년)에는 사적에, 쇼와 6년(1931년)에는 국보 보존법에 근거해, 국보의 지정을 받았습니다.
태평양 전쟁 중, 히메지에는 2번의 공습이 있었지만 다행히 히메지성은 큰 피해를 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방식으로 보존된 나고야성은 1945년에 공습에 의해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쇼와 26년(1951년) 전재를 면한 히메지성은 다시 천수 등 8동이 국보로 지정됩니다. 그리고, 쇼와 31년(1956년) 쇼와의 대수리라고 불리는 8년을 걸친 대수복 공사가 행해졌습니다.
헤세이가 되면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까지 지명도가 높아졌습니다. 2009년~2015년에 걸쳐서는 헤세이의 대수리라고 불리는 3번째의 천수대 수복이 행해져, 2015년에 현재의 모습이 되어 그랜드 오픈하고 있습니다.
현재 히메지 성
현재의 히메지성은 천수·망 등 36개의 동이 견학 가능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추천 견학 루트 외에, 스마트 폰을 사용해 성 각처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히메지성 대발견 어플」등의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히메지성 대발견 앱은 무료로 개설을 들을 수 있으면 호평입니다.
또한 토의 망, 숙수 주변 등 일부 건물은 봄 특별 공개에만 공개됩니다.
흥미가 있는 사람은 그 시기에 가 보면 좋을 것입니다.
매년 5월에는 성제가 열리고 다이묘 행렬 등 다양한 역사 그림책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매년 6월에는 유카타 축제가 개최되어 유카타 차림의 관광객이 히메지성에 모입니다.
히메지성이라고 하면 사쿠라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유명합니다만, 현재는 야간의 라이트 업도 행해지고 있어 계절에 따라서는 프로젝션 매핑 등도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시대극의 촬영 장소로서도 히메지성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어, 마츠다이라 켄 주연의 「날뛰기 장군」에서는, 에도성으로서 등장했습니다.

히메지성과 관련된 인물기 읽기

이케다 타다시카젊어서 죽은 아쉬워지는 죽음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많은 유능한 무장이 나타나 사라져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케다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를 섬긴 이케다 항흥,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이케다 테루마사와 이어져 왔습니다. 그 후, 이번에 소개하는 이케다 타다시게에
이케다 타다시카

히메지 성을 번청으로하는 히메지 번의 역사

히메지 번이케다 테루마사와 사카이가 등 명문이 다스린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성 중 하나인 히메지성은 에도시대를 통해 히메지성의 번청으로 기능했습니다. 히메지 번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무장, 이케다 테루 마사에 의해 시작되어, 악보 다이묘의 필두 「사카이 씨」가 다스린 시대에
히메지 번
히메지 번 DATA
번청히메지 성
구지역하리마 국식 히가시군
이시타카15만석
악보·외양악보
주요 번주사카이씨
추정 인구22만명(메이지 원년)

초대 번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가씨 이케다 테루마사. 어린 손자의 대로 국환 후, 악보의 혼다 타다마사가 입봉. 그 후, 마츠다이라가, 사카키하라가, 사카이가 등 번주가 교체. 역대 번주는 대로나 노중 등 막부의 요직에 취임.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