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나 무네 전 (2/2)오히토의 난의 서군 대장

야마나 무네

야마나 무네

기사 카테고리
인물기
이름
야마나 무네전(1404년~1473년)
출생지
교토부
관련 성
니조성

니조성

관령이었던 하타야마 지국은 아시카가 요시마사를 장군에 두는 것에 성공합니다. 하타야마 지국은 여기에서 스스로의 세력을 확대해 나가려고 행동에 나갑니다. 6대 장군이었던 아시카가 의교(7대 의승, 8대 의정의 아버지)는 수호 다이묘(국주)의 후계자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습니다. 그러면 국주의 자리를 빼앗은 쪽과 쫓겨난 쪽이 태어납니다. 하타 야마 지국은 쫓겨난 쪽을 국주 돌려 피는 데 도움이됩니다. 반대로 호소카와 카츠모토는 국주에 있던 쪽을 도와줍니다. 이와 같이 하타야마 지국과 호소카와 카츠모토가 정쟁을 하는 동안, 야마나 종전은 사위의 호소카와 카츠모토에 붙었습니다.

그런데 하타야마 지국의 하타야마가에서도 집 소동이 들립니다. 지국에는 정식 친자가 없었다. 거기서 동생의 아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지국에는 서자(인지하지 않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국은 스스로의 아이였던 이 서자를 불러 동생의 아이를 폐기한 후에 하타야마가의 흔적에 거합니다. 이 동생의 아들과 서자라고 해도 지국의 아이로 나뉘어 가신이 깨집니다. 호소카와 카츠모토와 야마나 종전은 이 싸움을 부추겨 하타야마가는 몰락해 갔습니다.

그런데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입니다. 처음에는 관령하타야마 지국에 지지되어 장군이 되었습니다만, 점차 하타야마가는 몰락해 갑니다. 그동안 어려서 장군에 취임한 아시카가 요시마사도 성장해 갔습니다. 성장하면 보다 실권을 가진 장군이 되고 싶다고 뜻합니다. 그 의정을 도운 것이 정소집사였던 이세정부모입니다. 정친은 아시카가 요시마사를 돕고 있었습니다만, 점차 실권을 잡아 갑니다. 또 관령직에 취할 수 있는 3관 영가 중 하나인 하바가에서 흔적 문제가 일어나면 이세정 부모는 개입해 호소카와 카츠모토와 적대합니다.

게다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에게는 친자가 없었습니다. 거기서 요시마사는 동생(6대 장군 아시카가 의교의 아들) 의시를 차기 장군에 세웁니다. 그런데 요시마사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 요시히로는 이세정 부모를 양육계로서 자랐습니다. 이세정 부모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동생 시시를 폐기하고 요시 나오를 장군에 취할 수 있도록 획책합니다. 아시카가 요시시는 이세 사다토모와 적대하고 있던 호소카와 카츠모토에게 도움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세정 부모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에게 의시를 토벌하도록 칭찬한 것이 노견해, 이세정 부모는 교토를 쫓겼습니다. (분정의 정변) 야마나 종전은 그동안 호소카와 카츠모토의 옆에 서 돕고 있습니다.

오인의 난과 종전의 죽음

그런데 하타야마 지국이나 이세 사다토모와 싸우고 있는 동안, 야마나 무네전은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와 막부의 명령에 자주 등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야마나 종전의 추토를 명령. 이것을 호소카와 카츠모토가 취해 중지하게 하는 등, 야마나 무네전과 호소카와 카츠모토와의 관계는 양호했습니다.

반면, 야마나 무네전은 적남교풍에게 가독을 양도했지만, 차남의 시호가 반발. 호소카와 카츠모토는 차남의 시부요를 돋보이게 하고 야마나 무네전과 호소카와 카츠모토와의 관계가 가라앉아 갑니다.

한층 더 관령이었던 하타야마 지국의 흔적 싸움은 계속되고 있어 호소카와 카츠모토와 야마나 무네전은 다투고 있던 각각의 진영을 지지합니다. 똑같이 관령으로 이룰 수 있었던 삼관령의 일가, 하나미씨도 후계쟁이 일어나 카츠모토와 무네전은 다투고 있는 각각의 진영을 지지했습니다.

그러자 점차 오우치 씨와 잇시키 씨 등 '반 호소카와 세력'이라고 부르는 다이묘가 야마나 무네전을 맡아 맹주적인 존재(다이메토)가 됩니다. 그리고 아시카가 장군가입니다.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에는 흔적이 없었습니다. 거기서 아버지이자 6대 장군이었던 아시카가 의교의 아들, 요시마사의 제의시를 차기 장군으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이 후에 요시마사의 아이가 생겼습니다, 나중의 9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오미입니다. 요시히로의 어머니였던 히노 토미코는 낳은 요시히로를 장군에 두기 위해 야마나 무네전에 접근했습니다.

이렇게 아시카가 장군가나 많은 다이묘가 흔적 싸움을 계기로 호소카와 카츠모토파, 야마나 종전파로 나뉘어 산발적인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응인 원년(1467) 상경 전투를 계기로 응인의 난이 시작됩니다. 야마나 무네전의 거성이었던 데이시카미 스미야마성에는, 각지로부터 집결한 서군이 모입니다. 종전은 이 2만6천기라고도 불린 병사를 이끌고 교토로 진군합니다.
야마나종전이 이끄는 서군은, 상경한 당초야말로 열세였지만 주방으로부터 진군해 온 오우치 마사히로(딸기오우치 교홍의 아이)의 도움을 얻으면 일진 일퇴의 공방을 펼칩니다.
 
교토에서 싸움이 길어지면 야마나 무네전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화목을 모색했지만, 싸움 도중의 화목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명 5년(1473년) 야마나 종전은 교토에서 병사했습니다, 향년 70.

종전의 죽은 2개월 후, 호소카와 카츠모토도 죽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종전과 카츠모토의 아이들이 화목을 하고 성립했습니다만, 각각의 진영은 산발적인 싸움을 계속해 최종적인 종결은 문명 9년(1477)이 되었습니다. 이 응인의 난이 일어나는 일로, 일본 전국에 싸움의 불씨가 뿌려 전국 시대의 기초가 됩니다. 야마나 종전은 얼굴이 붉고 호전적, 횡포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적입도」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반면, 많은 다이묘가 종전을 지지한 것처럼 인망이 있어 무로마치 시대 중기의 파란한 시대를 달려갔습니다.

야마나 무네전과 다케다성

다케다성은 현재의 효고현 아사히시 와다야마초에 있던 성입니다. 성의 형태가 호랑이가 덮여있는 것처럼 보인 것에서 호랑이 성 (토라 후스 조, 코가 조)라고도 불렸습니다.
 
다케다성의 역사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옛 전승을 정리한 「와다 카미미치씨 일기」에 의하면, 가요시 원년(1443)에 단바 수호였던 야마나 무네전이 가신의 오타가키 광경에 명령해 지은 성이라고합니다. 그 후, 오타가키씨에 의해 통치가 계속되었습니다만, 텐쇼 8년(1580)에 하시바 히데요시의 타지마 공격으로 다케다성은 낙성해, 오타가키씨도 쫓겨났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정권하에서는 아카마츠 히로히데가 입성해, 아카마츠씨의 시대에 현재의 총 이시가키 구조가 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시가키의 유구가 생겼습니다. 게이쵸 5년(1600) 세키가하라의 싸움이 일어나자 아카마츠씨는 서군에 부여한 일로부터 패퇴해 자칼했습니다. 이 아카마츠씨의 마지막과 함께 다케다성도 폐성이 됩니다.

현재, 다케다성은 나라의 사적으로서 등록되어 마루야마강의 강 안개에 성이 감싸인 것으로부터 「천공의 성」이나 「일본의 마추픽추」라고 불려 사랑 받고 있습니다.

야마나 씨의 이노스미야마성(이 스미야마죠)

이즈미야마성은 효고현 도요오카시 출석에 있던 산성입니다. 아기 도성, 이노스키 성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응안 5년(1372), 이즈시 신사의 북쪽에 있는 이즈미야마에 야마나 시의가 축성한 것이 시작으로 됩니다. 이후, 요요야마나씨의 거성이 되어 종전의 대에는 타지마국 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하·하리마·비젠·미작국 등 전국 66개국 중 11개국을 영지하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오인의 난이 일어나자 야마나 무네전은 각 영국에서 2만 6천기의 병사를 쿠니야마성에 집결시켜, 여기에서 교토로 진군했습니다.
이즈미야마는 고분상의 지형에 있으며, 소규모 고분 위에 성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이즈미야마성은 아리코산성터와 함께 「야마나씨 성터」로서 나라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야마나 씨와 시대 축제

시대 축제는 메이지 시대부터 행해지는 가을 축제입니다. 교토 3대 축제 중 하나로 꼽힙니다. 헤이안쿄의 천도를 기념해, 헤이안 신궁에서 교토고쇼까지 가마가 행행합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교토고쇼에서 헤이안 신궁으로 환급됩니다.

이 돌아가는 길의 가마를 선도하는 풍속 행렬을 시대 축제라고 부릅니다.
시대 축제는 헤이안 시대부터 막부 말기까지의 각 시대를 물들이는 형태로 행해져, 무로마치 시대도 포함합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낙중풍속열과 무로마치 막부 집정열이 참가합니다. 무로마치 집정열은 아시카가 장군이나 이세씨, 호소카와씨 외에 야마나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 시대에 도시가 있었던 교토, 그 교토에서 행해지는 축제를 보고 생각을 느끼게 하는 하루로는 어떻습니까.

야마나 무네 전의 기사를 다시 읽는다.

하즈키 토모요
작성자(라이터)학생 시절부터 역사와 지리를 좋아해, 사적이나 사찰 불각 순회를 즐기고, 고문서 등을 조사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사에서는 중세, 세계사에서는 유럽사에 강하고, 1차 자료 등의 자료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역사 소설까지 폭넓게 읽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무장이나 성은 너무 많아 좀처럼 들 수 없습니다만,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아케치 미츠히데, 성이면 히코네성·후시미성을 좋아한다. 무장의 삶과 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일면도 있습니다.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