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고에 성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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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고에 성 DATA
별칭가와고에 성, 하츠 메이 성, 기리 은성
축성1457년
주소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 카쿠마치 2-13-1
가와고에 성에 교통 액세스
도부 도조선·JR 가와고에선 “가와고에역 동쪽 출구” 및 세이부 신주쿠선 “혼카와고에역”에서 도부 버스 “가미오역 서쪽 출구행”, “사이타마의 대행” 또는 “가와고에 운동 공원행”으로 약 10분 “시청 앞” 하차, 도보 약 5분.

HISTORY동일본 유일한 혼마루 고텐이 남아있는 가와고에 성

가와고에성은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 위치한 헤이조입니다. 무로마치 시대, 나가로쿠 원년(1457년)에 오기타니 우에스기씨의 우에스기 모치 아침이 오타도 마코토, 오타도 관부자에게 명령해 축성시킨 성입니다. 에도시대에 개축을 거듭해, 현재도 동일본에서 유일하게 혼마루고텐이 남는 성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가와고에성의 역사를 풀어 갑시다.

가와고에 성 축성에서 에도 시대까지
가와고에성이 최초로 축성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의 나가로쿠 원년(1457년)입니다. 이 시대, 카와고에를 포함한 관동 10개소에는 가마쿠라부가 놓여져, 가마쿠라 공방 아시카가씨와 보좌역의 우에스기씨에 의해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대를 거듭함에 따라 가마쿠라 공방을 맡고 있던 아시카가씨는 독립 지향을 강하게, 중앙 정권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에스기씨와 대립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향덕 3년(1454년)에 제5대 가마쿠라 공방 아시카가씨가 관동관령상 스기헌타다를 모살한 것을 계기로 향덕의 난이 발발했습니다. 이 난은 28년 계속되어 가마쿠라부가 다스리고 있던 관동 10개국을 혼란에 빠집니다. 카와고에는 우에스기씨와 아시카가씨가 대립하는 최전선이 되어, 우에스기씨는 전의 본거지로 하기 위해 나가로쿠 원년(1457년) 오타도 마코토, 오타도 관부자에게 카와고에성을 축성시켜, 성주가 되었습니다. 덧붙여 오타도 관은 에도성을 축성한 무장으로서도 유명합니다만, 에도성도 가와고에성과 함께 아시카가씨의 방어 라인으로서 축성된 성입니다.
이때 축성된 가와고에성은 5만평의 넓이를 갖고 8문 8망을 띤 용장한 성이었습니다. 혼마루 남서에 있던 고대에 후지미 망치를 마련한 등의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덧붙여 오타도 관은 향덕의 난의 수렴에도 노력했습니다. 문명 14년(1482년)에 아시카가씨와 무로마치 막부는 화해하고 향덕의 난은 끝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타도 관의 주군인 우에스기 씨는 도관이 이름을 올린 것을 두려워 그를 암살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타씨는 우에스기씨와 이반하고, 우에스기씨 자신도 내분이 계속되어, 거기에 가마쿠라 공방이었던 아시카가시가 개입해 나가요시의 난이 발발합니다.
이 난은 13년 계속되어 그 후 관동 1엔을 다스리게 된 후 호조씨가 관동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고호조 씨의 개조인 호조 조운은 나가요시의 난을 계기로 이즈국에서 사가미국을 제압해, 사쿠모의 최남인 호조 츠나미가 무사시국 일대를 침략해 수중에 납입합니다. 우에스기 씨를 쫓아내고 관동 1엔의 지배에 나선 호조 츠나미는 무사시국 지배의 거점으로서 가와고에성을 거성으로 했습니다. 천문 15년(1546년)에 발발한 호조씨 강군과 우에스기 헌정·우에스기 아침정·아시카가 하루씨 연합군에 의한 가와고에성의 싸움에 승리한 호조씨 강은, 무사시국의 지배를 완성시켜, 가와고에성의 대개수 했습니다. 고호죠가 지배한 시대, 카와고에성은 호조씨 야스시, 호조씨정 등이 성주를 맡고, 호조 츠나나리, 오도지 모리마사, 오도지 시게코, 오도지 마사시게 등이 성대를 근무하고 있습니다.
텐쇼 18년(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와라 정벌에 나서, 카와고에성은 마에다 토시야의 군세에 의해 공격해 떨어졌습니다. 오다와라 정벌에 의해 후호조씨는 멸망하고, 관동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봉쇄됩니다. 가와고에 성은 도쿠가와 씨 악보 필두의 사카이 시게타다가 봉쇄되어 가와고에 번이 탄생합니다. 이후, 가와고에 번은 에도 막부의 요소로서 에치젠 마츠다이라 등이 성주를 맡아 친번이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의 가와고에 성
에도시대의 가와고에성은 히로나가 16년(1628년)에 오오카우치 마츠다이라가의 마쓰다이라 노부즈나에 의해 대확장 공사가 행해집니다. 이로써 성곽은 배의 규모가 되어 번청으로서의 체재가 정돈되었습니다. 덧붙여 천수지는 쌓이지 않고 후지미 망치가 천수의 대신으로서 이용되었습니다. 그 이름대로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는 망토로, 현재는 그 터에 아사마 신사와 미타카 신사가 쌓여 있습니다. 또, 가나가 원년(1848년) 에치젠 마츠다이라가의 마쓰다이라 사이전에 의해, 히로카즈 3년(1846년)에 소실한 혼마루고텐의 재건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존하는 혼마루 고텐입니다.
메이지 이후의 가와고에 성
메이지 원년(1868년), 마츠이 마츠다이라가의 마츠다이라 야스히데가 메이지 정부에 협순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가와고에 성의 해자를 메운다. 다음 메이지 2년이 되면 노후화한 성 부분의 철거가 시작되어, 혼마루 궁을 엿보는 성 부분이 거의 철거되었습니다. 메이지 6년(1873년)의 폐성령에 따라, 가와고에 성내의 불용·파손의 건물 등의 입찰이나 매도 지불이 행해져, 터지는 시청이나 공원, 학교 등에 정비되어, 다이쇼 시대에 가와고에 성터가 사이타마 현 지정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후, 쇼와 42년(1967년)에 혼마루 고텐이 현 지정 유형 문화재된 것으로, 그 당시 현존하고 있던 살롱에, 이축되고 있던 노중 충전소가 재이축되어, 현재 공개되고 있는 것처럼 모양이 정돈되었습니다.
덧붙여 혼마루 고텐의 살롱에서 현존하고 있는 것은 고치성의 것과 가와고에성의 살롱만으로,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또, 나카노몬 호리터, 키리후키노 우물, 미요시노 신사 등 에도시대의 성의 유구도 점재하고 있어, 현재는 관광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헤세이 18년(2006년)에는, 19번째의 일본 백명성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요약
현재,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는 “코에도”로서 마을 일을 하고 있어, 도쿄에서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관광지로서 인기입니다. 가와고에 성 혼마루 고텐은 내부가 견학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가와고에 산책의 인기 명소입니다. 봄에는 「오에도 가와고에 봄 축제」가 행해져, 가와고에 번화 조총 총포대 사자에 의한 화조 총 실연 등, 에도 시대를 조롱하는 이벤트도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또, 가와고에 시내에 있는 천대종의 사원 키타인에는, 객전・서원・고리 등이 에도성에서 이축되어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히카와 신사 경내에 있는 도쇼구는 3대 장군 이에미츠가 건립한 것으로, 에도 성내에서 이축된 종교 시설로서는 현존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가와고에를 방문했을 때는, 가와고에 성터와 함께 둘러보는 것도 즐거울 것입니다.

가와고에 성을 번청으로하는 가와고에 번의 역사

가와고에 번대로·노중 등을 배출한 유력 다이묘가 다스린다
가와고에 번은, 현재의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 있던 무사시국 제일의 대번이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관동에 이봉이 되었을 때, 중신의 사카이 시게타다를 가와고에성의 번주에게 놓고 가와고에 번을 열게 했습니다. 에도 시대를 통해 대로와 노인을 역임
가와고에 번
가와고에 번 DATA
번청가와고에 성
구지역무사시나라 이루마군
이시타카8만석
악보·외양악보
주요 번주마츠다이라씨
추정 인구6만2000명(메이지 원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관동 입부에 따라 가신·사카이 시게타다가 가와고에에 봉쇄되어 입번. 역대 성주는 막부의 요직을 역임. 에치젠 마츠다이라가 마에바시에서 가와고에로 전봉한 후, 마에바시로 복귀. 가와고에에는 마쓰이 마츠다이라가 입봉해 메이지 유신을 맞이한다.

일본 성 사진 콘테스트 .03